술은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기후, 농업, 종교,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의 농축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단순히 “우리나라 전통주는 왜 막걸리부터 떠오를까?” 하는 호기심이 시작이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우리 조상들이 술을 얼마나 정성껏, 또 철학적으로 만들어 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조선과 삼국 시대의 술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술을 마셨다는 기록은 기원전 1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표적으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고조선 사람들이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마셨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는 당시에도 술이 제의(祭儀)나 공동체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로 해석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시대에도 술은 중요한 문화의 일부였습니다. 특히 제사나 의례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였고, 왕실이나 귀족층에서는 독자적인 주조법을 발전시켜왔다고 전해집니다.
예전엔 술이 단순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신과 조상과 소통하는 매개체였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처럼 "회식"이나 "분위기 잡는 용도"가 아닌, 정말 숭고한 목적이 있었던 거죠.

고려 시대: 불교 사회 속에서도 이어진 술 문화
고려 시대는 불교가 국가 종교였기에 술 소비가 줄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고급 술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대표적인 고려 전통주로는 '이화주', '백하주' 등이 있으며, 고려청자에 담긴 술잔과 주전자에서도 예술과 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술을 금하긴 했지만, 사회 전반에서는 술이 여전히 교류와 의례의 중요한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죠.
저는 이 시기의 술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불교 사회인데도 술 문화가 이렇게나 발전했단 말이야?’ 하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종교적 금기와 현실의 문화는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조선 시대: 술이 일상이자 예법이 되다
조선은 유교 사회였고, 예(禮)를 중시했기 때문에 술 역시 일상 속 ‘격식 있는’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제례, 혼례, 환갑, 상례까지 모든 의식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고, 심지어 술을 따라야 하는 법도(술을 세 번 따르고 고개를 숙이는 등)까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특히 여성들이 술을 빚는 주체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안주인 술"이라 불리며 집안마다 고유한 레시피가 전해졌고, 지금의 전통주 브랜드들도 이 유산을 이어받은 곳이 많습니다.
예전에 한 전통주 양조장을 방문했을 때, 고조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던 비밀 누룩 레시피를 여전히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술을 한 모금 마셨을 때, 단순히 맛이 아니라 역사와 시간을 마시는 기분이 들더군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단절과 복원
일제강점기에는 전통주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주세법이 도입되며 개인이 술을 빚는 행위가 금지되었고, 그로 인해 오랜 세월 이어지던 가양주 문화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죠.
광복 이후에도 대량생산 중심의 소주·맥주 산업이 전통주를 밀어냈고, 한동안 우리는 ‘술’ 하면 양주나 수입 맥주를 먼저 떠올리는 세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주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맛과 향의 깊이뿐 아니라, 우리 술에 담긴 지역성·역사성·철학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도 몇 해 전부터 전통주 갤러리에서 시음회를 다녀보고, 지역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보는 등 ‘우리 술’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낯설던 맛이었는데, 마실수록 왜 이 술이 의례, 환대, 일상에 빠지지 않았는지 알겠더라고요.

마무리하며
우리나라 술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술 문화’를 아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떤 정서를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술은 곡식에 대한 감사, 공동체의 유대, 정성이라는 가치를 담은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엔 “막걸리나 소주 말고 우리 술이 뭐가 있었더라?” 싶었는데, 조사하면서 저도 정말 많은 걸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나니 한 잔의 술이 더 깊고,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